1.
6월 25일 금요일.
이틀 밤을 꼬박 새웠는데도, 잠이 오지 않았다.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기사 마감 앞두고 마음에 얹힌 것이 많았던 까닭이건만,
선배는 그게 '뽕맞은 증거'라고 웃더라.
우스개 소리 뒤.
후배에게, 선배는,
그게 기자의 '운명이다'라고 말했다.
무거웠다. 그리고 무서웠다.
선배의 '대공사' 끝에 나온 삼성 백혈병 기사.
대장까지 보고 난 시간은 밤 11시 반.
끝나고 나니 신기하게 잠이 쏟아졌다.
도저히 버스를 타고 집에 올 수 없어 택시를 탔다.
집에 도착해 눈 떠보니 선배에게 와 있는 문자 메시지.
"네가 시사IN 역사를 썼다. 신입기자가 커버를 두 번 쓴 건 깨기 힘들거다. 고생했다"
피로가 싹 가셨다. (역시 난 부정할 수 없는 '고빠'다...-_-)
그리고 한 편, 동기한테 미안했다.
임양은 그게 '착한사람 콤플렉스'라고 나를 나무랐지만.
아무개씨는 "한참 월드컵 기간에 무슨 백혈병이냐"라고 찡얼거렸다.
나는, "저한테는 월드컵보다 이게 더 중요합니다"라고 받아쳤다.
부디 다치는 사람 없길, 그리고 세상에 의미 있는 기사이길.
2.
7월부터는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위한 희망 UP 캠페인의 체험단으로
한 달 동안 장수마을에서 살 게 된다.
태어나서 엄마랑 제일 오래 떨어져 살게 되겠군. :)
한 달 간 내 '사생활'은 없을 가능성이 높다.
기대 반, 걱정 반.
아래는 체험단 지원하면서 썼던 자기 소개서 ㅎㅎ
6월 25일 금요일.
이틀 밤을 꼬박 새웠는데도, 잠이 오지 않았다.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기사 마감 앞두고 마음에 얹힌 것이 많았던 까닭이건만,
선배는 그게 '뽕맞은 증거'라고 웃더라.
우스개 소리 뒤.
후배에게, 선배는,
그게 기자의 '운명이다'라고 말했다.
무거웠다. 그리고 무서웠다.
선배의 '대공사' 끝에 나온 삼성 백혈병 기사.
대장까지 보고 난 시간은 밤 11시 반.
끝나고 나니 신기하게 잠이 쏟아졌다.
도저히 버스를 타고 집에 올 수 없어 택시를 탔다.
집에 도착해 눈 떠보니 선배에게 와 있는 문자 메시지.
"네가 시사IN 역사를 썼다. 신입기자가 커버를 두 번 쓴 건 깨기 힘들거다. 고생했다"
피로가 싹 가셨다. (역시 난 부정할 수 없는 '고빠'다...-_-)
그리고 한 편, 동기한테 미안했다.
임양은 그게 '착한사람 콤플렉스'라고 나를 나무랐지만.
아무개씨는 "한참 월드컵 기간에 무슨 백혈병이냐"라고 찡얼거렸다.
나는, "저한테는 월드컵보다 이게 더 중요합니다"라고 받아쳤다.
부디 다치는 사람 없길, 그리고 세상에 의미 있는 기사이길.
2.
7월부터는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위한 희망 UP 캠페인의 체험단으로
한 달 동안 장수마을에서 살 게 된다.
태어나서 엄마랑 제일 오래 떨어져 살게 되겠군. :)
한 달 간 내 '사생활'은 없을 가능성이 높다.
기대 반, 걱정 반.
아래는 체험단 지원하면서 썼던 자기 소개서 ㅎㅎ
지난해 10월 시사IN에 입사할 때 썼던 지원서를 오랜만에 다시 열어보았습니다. 기자로 살겠다는 결심을 하면서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잘못된 일과 불의'에 함께 책임지고 싶고, '닦아줄 수도 있을 눈물을 흘리게 만들'고 싶지 않다.”라고 썼더군요. 그 이후로 7개월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물론 그 다짐을 늘 가슴에 품고 현장을 뛰어다닙니다. 그러나 언제나 ‘갈증’을 느끼지요. ‘쓰는 것’에 제한 된 행동영역의 한계를 느끼면서 때때로 기자가 타인의 삶에 기생하는 거추장스러운 존재라는 회의를 느낄 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말을 만지지도, 세상을 만지지도 못하는 스스로를 가여워하며 최악과 차악을 오고 가는 글로 입에 밥을 밀어 넣고 있습니다.
(중략)
지원서에 있는 월 평균 한 달 생활비를 작성하며 ‘1인 최저생계비’를 처음으로 검색해 봤습니다. 50만 4천원. 아버지가 계시지 않았던 가정, 풍족하게 살지 않았지만 가난하게 살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새삼 상기해봅니다. 대학에 가기 위해 3년간 제 힘으로 돈을 벌어야 했지만, 그래도 ‘대졸’이라는 딱지를 달고 있는 저를 돌아봅니다. 88만원 세대라고 명명되는 20대들 사이에서 많지 않은 월급이지만 ‘정규직 20대’라는 안정된 제 삶을 고민해 봅니다.
‘정규직’ 기자가 되고 나서 비정규직·이주노동자 등을 만날 때마다 가장 경계하는 점도 ‘내가 얼마나 취재원을 이해하고 기사를 쓸까’라는 고민이었습니다. 한 달, 그래요. 고작 한 달이지만, 짧은 시간 만나고 난 후 한 사람의 삶을 이해하는 것 마냥 쓰는 글이 아니라, 몸으로 체험해 낸 글로 사람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그 것이 애초 제가 기자가 되기로 결심했던 의미와 부합하는 것이기도 하구요.
(후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