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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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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규모 인생계획 / 2010/02/03 00:23

1.
기자질 4개월만에 이런 '권태'를 느껴도 되는건지 모르겠다. 어쩌자고, 너는. 응?
취재는 성에 차지 않고, 글은 늘지 않고.
J선배의 조언에 으쌰으쌰, 하던게 불과 몇일 전 이건만. 그것도 작심삼일.
이거슨 출장때마다 주책맞게 터지는 생리 때문일까.
주말 꼬박꼬박 챙겨쉬는 주제에 생리휴가 생각이나 하고 있고.

사무실 형광등 조명 그리워지는 모텔방에 앉아 기사 한 줄도 밀고 나가지 못하고 멍청하게 앉아 있자니, 자괴감만 깊어가는구나.
언젠가 모텔방에 앉아 기사를 쓰며 조명 눈 아프다고 투덜대던 내 뒷모습을 보던 B형이 그랬지.
모텔방 조명은 기사 쓰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고.


2.
옛 일이라고, 나는 다 털었노라고, 괜찮다고 큰소리 치곤 했다.
P선배가 성폭행과 폭행을 '단순비교'하는 소리를 들을 때까지는 말이지. 
대거리를 하면서 순간 어쩔 수 없이 굳어지는 내 표정을 관리 못하고, 다리가 후들거렸지.
숨기고 싶었던 눈물까지 또롱또롱 맺힐 때 다시 아프게 깨달아야 했다.  
내가 아직도 그 순간을 털어내지 못하고 있음을, 나는 아직도 그 남자를 너무나 죽이고 싶어한다는 걸.


3.
내게 처음 김진숙 지도위원의 단식을 일러줬던 C선배에게 한진중공업으로 출장 간다고 문자를 보냈다.
선배의 답장, "잘 다녀와라. 취재하기 어려운, 질문하기 민망한 곳 연속이네. 수고"

나는 왜, 그 때.
'노동전문기자'가 되고 싶다고 함부로 말했던걸까.
노동 현장이란 곳은 늘 이렇게 나를 무력하게 하는 곳인데.


4.
머리 센 아저씨들의 기름때 묻은 작업복과 손톱 밑 까맣게 낀 때를 보면서 
그 시간 역시 기름밥을 먹고 있을 검정강아지 모습의 동생을 떠올려야 했다.
시끄럽게 돌아가는 기계 소리에 귀가 좋지 않고, 밥 맛도 느끼지 못하면서 병원에 갈 시간조차 쉽게 내지 못하는.
나는 노동을 '신성하다'라고 떠드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인터뷰 중 동생 얘기를 꺼낸 내게 각자의 역할이 있는게죠, 라고 말했지만. 그래도.

동생이 얼마 전, 엄마한테 '깜박이'를 사달라고 했단다.
제 월급의 3분의 1이 넘는 30만원이 훌쩍 넘는 기계 가격을 보더니 이내 됐다고 손사래를 쳤다지.
온통 영어로 써 있는 공장 기계들이 꽤 답답했던 모양.

얼마 전, 새벽까지 술 먹고 들어가 내가, 엄마를 붙잡고 한참을 울었다고 한다.
동생한테 미안하다고. 계속 그 소리를 반복했다네.
고작 4개월 일했는데, 2년을 일한 동생보다 월급이 많은 게,
그게 그렇게 마음이 걸려 있었나보다.

누나가 깜박이 그까이꺼, 사준다고 다짐한다.


5.
벌써 몇일 전 이야기.

권명숙 어머님(고 이성수씨 부인)이 새로 이사한 아파트 층수는 13층.
용산 남일당에서 몸 편히 뉘일 수 있는 곳으로 갔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입 안 가득 물집이 잡혀 수화기 너머 말소리도 불분명했다.
높은 집 베란다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남편 생각이 난다고 했다.
밖에 나가면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는 것 같아서, 슈퍼 가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본인 집으로 와서 자고 출근하면 안 되겠냐고,
그건 '부탁'이었다.

부디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계셔야 한다고, 곧 양 손 무겁게 맛있는 거 사들고 집들이 가겠다고.
언제 지킬지 모르는 헛공약을 날리고 나니 마음이 무거웠다.


6.
낙서를 쭉 쓰면서
바지런히, 열심히 살아야겠다, 라고.
새삼
가슴을 치며 다짐한다.

나의 권태가 참으로 사치롭다.


7.
성실한 자아비판 이후, 달콤한 칭찬 하나. 쑥쓰럽지만 나한테.

양심적병역거부라는 이유로 십 오척 구치소 담장 아래 갇혀 있는 B에게
시사IN을 지난주부터 넣어주기 시작했다.
부디 별 문제 없이 받아볼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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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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